돈카츠 윤석
경양식집이나 호프집 스타일의 얇은 돈까스도 물론 맛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은 고기를 두툼하게 손질해서 튀기는 일본식 돈카츠이다. 요 몇 년 사이에 엄청나게 유행하고 있는 돈카츠 - <백종원의 골목식당> 포방터 편에서 크게 주목받아 지금은 제주도에서 성업 중인 ‘연돈’에서 파는 것과 같은 그런 돈카츠. 두꺼운 고기를 쓰기에 원육 자체의 품질이 좋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빵가루를 어떻게 만들어 쓰는지, 튀길 때 기름의 온도와 시간은 어떻게 정하는지, 완성된 돈카츠를 무엇에 곁들여 먹는지 등에 따라 맛이 크게 달라지기에 이런 타입의 돈카츠는 조금 더 전문적인 요리라는 시각에서 접근하게 되며, 가격도 그만큼 비싼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울 마포구 대흥역 인근의 ‘돈카츠윤석’은 본래 일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던 최윤석 셰프가 도쿄에서 돈카츠를 맛보러 다니다가 아예 전문 식당을 차렸다고 하는 곳으로, 오픈 초기부터 정말 맛있는 돈카츠를 낸다는 이야기가 자자했는데 그동안 연이 닿지 않다가 이제야 찾게 되었다.
안내 받은 자리에 앉으니 곧 돈카츠 소스와 트러플 오일, 소금, 유즈코쇼 등을 세팅한 작은 쟁반과 밥그릇, 국그릇이 놓인 큰 쟁반이 놓인다. 그리고 잠시 후, 주문한 1+급 안심카츠(180g, 1만5000원)가 나왔다. 본래는 1+급 등심과 안심을 함께 맛볼 수 있는 세트(180+50g, 1만7000원)를 먹고자 했지만, 오늘은 등심이 먼저 소진된 모양이라 안심카츠로 주문했다. 정갈함이 느껴지는 검은 접시 위에 하얀색, 분홍색, 황금색이 맞춤하게 어우러진 안심카츠 여섯 점이 먹음직스러운 자태를 뽐내고 있다. 특별히 멋 내지 않은 듯하면서도 말끔하게 쌓아 올린 양배추 샐러드와 파슬리, 레몬 한 점은 기름져 보이기 쉬운 접시 위의 풍경에 시각적 청량감을 주고 있다.
카츠 한 점을 집어 아무것도 찍지 않은 채 한 입을 베물어 보는 순간, ‘인생 카츠’라고 할 만한 요리를 마주했음을 직감한다. 최상급 안심 특유의 부드럽고 치밀한 식감을 더할 나위 없이 잘 살려낸 카츠와 껄끄럽지도 무르지도 않도록 절묘하게 튀겨낸 빵가루가 입 안에서 부드럽게 어우러지며 임팩트를 선사한 것이다. 고급스럽고 풍부한 향으로 카츠의 풍미를 더해주는 트러플 오일, 은은한 단맛과 깔끔한 짠맛으로 고기 본연의 고소함을 더욱 끌어올리는 히말라야 핑크솔트, 기름진 음식을 먹는 중간에 짜릿하고 상쾌한 매콤짭짤함을 선사하는 유즈코쇼, 진한 풍미로 파트너의 정통성을 주장하는 돈카츠 소스를 고루 곁들이며 카츠를 즐기는 과정은 일류 오케스트라와 함께 변화무쌍한 교향곡을 연주하는 것과 같은 짜릿한 경험을 안겨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마지막 한 점의 카츠가 남아 있었다. 자, 이 연주를 어떻게 끝맺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오늘 가장 큰 임팩트를 안겨준 트러플 오일을 선택했다. 이 한 점의 카츠는 트러플이라는 고급스러운 이름에 전혀 눌리지 않는 풍부한 맛을 품고 있으니까. 카츠와 밥, 국, 샐러드와 찬 모두를 깔끔하게 비운 만족스러운 식사가 끝났다. 도쿄 출장 때 일부러 찾아간 유명한 가게에서도 이 정도 가격으로 이런 맛을 즐긴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돈카츠윤석에서는 제주와 충남 논산의 돼지 원육을 엄격하게 선별하여 사용하는 것은 물론 김진환 제과점의 식빵으로 빵가루를 만들어 쓴다고 한다. 김진환 제과점의 식빵은 즐겨 먹는 서울 시내 최고의 식빵 중 하나로 너무나 인기가 높아 평일 낮에도 조금만 늦으면 매진되어 허탕치기 일쑤인 귀한 몸인데, 이것으로 빵가루를 만들어 쓴다 하니 호감이 더해진다. 다음에는 이번에 맛보지 못한 등심카츠에 새우후라이를 추가하여 먹어 보리라 다짐하며 가게 문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