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벳·윙 참패에…LG, 스마트폰 사업 진짜 접나
최근 직장인 인명게시판인 블라인드를 비롯해 온라인 커뮤니티, 포털증권 토론방 등에서는 LG전자가 MC(모바일커뮤니케이션)사업본부를 정리 또는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돈다. 구체적으로 MC사업본부 직원중 60%를 타 사업부로 이동시키고 30%는 잔류시키되 나머지 10%가량은 희망퇴직을 받는다는 식이다. 나아가 "LG가 오는 26일 스마트폰 사업포기를 발표할 것"이라는 미확인 소문까지 들린다. 한 포털 전문가 상담코너에 MC사업본부 직원이라고 밝힌 이가 타사업부로 이동하지 않으면 위로금과 함께 강제퇴사를 진행한다며 대기업의 강제퇴사가 가능한지를 문의하기도 했다. 해당 질문 조회수는 1만건이 넘었다.
LG전자의 휴대폰 사업 철수설이 하루이틀 얘기가 아니지만, 눈길을 끄는 건 최근 LG그룹의 사업구조 개편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뒤숭숭한 LG전자, 매각설 신빙성 있나
그렇다면 이같은 사업부 정리나 매각설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을까. 일단 업계에서는 23분기 연속적자를 기록하며 애물단지로 전락한 MC사업부의 현상황에 비춰보면 충분히 나올 법한 시나리오지만 모바일 사업의 중요성을 감안하면 존속 가능성에 더 무게가 실린다.
1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MC사업본부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진행중인 것으로 보인다. 롤러블폰처럼 하이앤드 스마트폰 개발에 집중하되 중저가폰의 경우 제조업자개발생산(ODM) 방식으로 전환한다는 것이다.
이와관련 현재 4000여명 가량인 임직원 일부를 타 본부로 옮기는 것은 물론 2019년 30%정도이던 ODM 비중을 70%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MC사업본부는 지난해 12월 ODM 사업조직을 강화하고 선행연구와 선행마케팅 조직을 통폐합했으며 일부 지원 조직은 본사 조직으로 옮긴 바 있다.
ODM은 양날의 검이다. 중국 등 해외 업체에 생산을 맡기고 자사 로고만 부착해 판매한다. 제조비용을 절감하고 점유율 확대에 용이하지만 브랜드 가치가 희석될 수 있어 대부분 저가 보급형 폰에만 쓴다.
그런데도 ODM폰 비중을 더 늘린다는 것은 벼랑끝에 몰린 LG전자 스마트폰 사업의 현 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매각설도 이같은 사업구조 개편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직원들이 이를 외부에 흘리면서 확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제품 라인업 개편의 결과가 참패로 이어진 것과도 무관치않아 보인다.
23분기 연속적자에 기대작 벨벳, 윙 잇따라 참패
LG전자의 MC사업본부의 지난해 적자는 8000~9000억원 가량으로 추정된다. LG전자 전체 잠정실적상 영업이익이 3조 1918억원이었는데 MC사업부의 영업손실이 없었다면 4조원대로 올라간다. 사내에서조차 애물단지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지난 5년간 연평균 9000억원가량의 적자를 봤다. 2019년에는 1조원에 달했다.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 모바일사업 비용 통제에 나서 3분기 영업적자를 1400억원까지 줄였지만 4분기 다시 2000억원대로 올라섰다.
기대했던 스위블폰 ' LG 윙'의 부진이 컸다. 지난해 10월 출시된 LG윙은 폼팩터 혁신을 전면에 내세운 전략제품이다. 2019년 말 취임한 이연모 MC사업본부장이 주도한 폼팩터 혁신전략 '익스플로러 프로젝트'의 첫 작품이었지만 국내 누적판매량이 10만대에 못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가 지난해 출시한 갤럭시S20의 경우 부진했다는 평가에도 출시 첫 달에만 국내에서 60만대 가량이 팔렸다.
앞서 출시했던 '벨벳' 역시 성공작은 아니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플래그십폰에서 번번히 경쟁사에 밀리니 사양을 낮춰 준프리미엄 시장을 표방했지만 도리어 가성비가 떨어지며 이도저도 아닌 폰이 됐다"고 지적했다.
판매부진이 부품조달 단가와 마케팅 여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에 빠졌다. 제품 사양을 결정하는 모바일칩셋의 경우 하이엔드모델은 양산규모가 적으면 구매단가가 올라간다. 벨벳과 윙은 경쟁사들이 최신폰에 채택한 스냅드래곤 865대신 765로 칩셋사양을 낮추는 전략을 썼지만 가성비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자 소비자들에 실망감만 안겼다는 분석이다.
롤러블폰이 희망될까? 시장선 '글쎄'...SW개선, 비전 보여야
올해 MC사업본부는 흑자전환을 목표로 내세웠다. 특히 화면이 말리는 롤러블폰에 기대를 걸고있다. 지난 11일 온라인으로 열린 CES에서 롤러블폰을 선보이자 외신들도 찬사를 쏟아냈다.
일각에서 CES에서 롤러블폰의 자세한 사양 소개없이 5초가량 짧은 영상만 보여준 것이 매각을 염두에 둔 '몸값올리기'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지나친 해석이며 종합가전 업체로서 LG전자의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스마트폰 사업을 포기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대부분이다. AI(인공지능)와 IoT(사물인터넷)로 기기 간 연결과 컨버전스, 스마트화가 부각되며 그 중심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이를 포기하면 그저 그런 가전업체, 부품업체로 전락하게 된다는 것이다. LG전자가 주력인 가전의 외연확장을 위해서라도 스마트폰은 버릴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당분간 적자폭을 줄이면서 반전을 노리는 게 불가피하며 롤러블폰이 그 신호탄이라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롤러블폰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도 경계한다. 혁신적인 제품은 맞지만 실적반등을 위한 카드로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올해 출시되더라도 양산물량은 30만대 수준으로 많지않은데다 삼성전자 갤럭시폴드 처럼 검증과 안정화 단계를 거쳐야한다는 설명이다. 미국 제재로 어려움을 겪는 화웨이의 공백을 노린 샤오미와 오포, 비보 등 중국 스마트폰 제조사들의 부상으로 롤러블 디스플레이 등 핵심부품 조달도 여의치않은 상황이다.
근본적으로 폼팩터 혁신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최근 스마트폰은 소프트웨어(SW)와 사용자인터페이스(UI) 경쟁력에 좌우되는데 LG전자는 이에 소홀했다는 것이다. 애플이 PC시절부터 쌓아온 SW경쟁력을 모바일로 옮기며 아이폰을 키웠고 삼성전자 역시 안드로이드폰을 뒤늦게 시작했지만 SW조직에 대대적인 투자를 하며 시장을 장악했다. 반면 LG전자의 경우 SW 투자가 미흡하고 경쟁사와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는 형국인 만큼 이 분야에 더 집중해야한다는 것이다.
IT전문가인 최필식씨는 "롤러블이라해도 결국 사람들이 체감하는 것은 SW와 UI일텐데 이부분에서 개선이 없다면 결국 외면받게될 것"이라며 "LG전자가 스마트폰 사업에서 반등하려면 단순 폰팔이의 시각에서 벗어나 종합적인 스마트 디바이스 제조사로 비전을 보여주도록 조직의 역량을 모아야한다"고 말했다.